2023. 3. 13. 13:13ㆍ작업일지/그림 일러스트
2020년 말에 탈오 프로젝트라는 팀으로부터 인스타그램 DM을 받았다.
2021년 달력 일러스트 제안이었다.
외주라기보다는 여러 일러스트 작가들을 모아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었다.
계획은 작가들이 각자 원하는 지역과 달을 선정하고 그에 맞는 일러스트 작업을 한 뒤에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제작비 금액만큼을 텀블벅 성공 금액으로 설정하고 그 이후에 나오는 금액에서 참여한 작가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었는데 이게 크게 성공할 거라는 기대 자체가 없었기에, 내 개인적으로는 돈 보다 그냥 경험 삼아 진행한 일이었다.
다만 착수금 5만원 가량은 받았기 때문에 아예 무일푼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5만 원이면 무료에 가깝지만...)
탈오 프로젝트는 정확히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정보는 없었지만 몇 번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예상해 보면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인 것 같았다.(자본이 없는 느낌도 그렇고...)
이들이 원한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 여러 지역들의 특색을 살린 달력 제작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맨 처음 정한 것이 작가마다 어떤 지역을 소재로 그림 작업을 할 것인지였다.
이 단계에서 처음에 모였던 작가들 중 상당수가 이탈했다.
지역을 선정하는 것 이전에 돈 문제였다.
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팀은 돈 관련한 일에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고, 비교적 사회에서의 여러 경험이 많은 작가들은 여러 문제들을 지적하며 이탈한 것이었다.(저작권과 인센티브 문제)
나는 애초에 돈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기에 사기만 아니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쭉 프로젝트에 남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성공할 거라고 기대도 잘 안 됐고 무엇보다 텀블벅 펀딩을 한 번은 경험해보고 싶었다.
많은 작가들이 서울을 선택할 거라 예상이 돼서 나는 추억이 많은 '일산' 지역을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호수공원을 꼭 그리고 싶었다.
일산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고모 때문이었다.
고모때문에 나는 일산이라는 지역을 알았고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꼭 일산에 갔다.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부터 쭈욱 다녔으니 일산이 제2의 고향이라고 할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몇 달 전 고모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하던 시기에 고모에 대한 그리움이 굉장히 컸다.
일러스트 작업할 지역을 물어봤을 때 당연히 일산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이왕이면 고모가 돌아가신 7월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 7월을 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고, 프로젝트 팀에서도 내가 가장 먼저 제안을 했기에 그렇게 해줬다.
그런데 얼마 뒤에 내가 5월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어린 친구들이다 보니 정말 이런 일을 진행하기에 너무 어리숙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 변경점이 있으면 당사자들에게 먼저 상의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자기들끼리 문제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통보식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미 작업은 시작이 되었고 되돌릴 수 없지만, 쓴소리는 하고 싶어서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왜 안되는지 말을 해주었다.
결국 아쉽지만 나는 5월의 일산 호수공원으로 결정이 되었다.
이 작업을 이유로 고모와의 추억이 많은 일산 호수공원에 몇 번 방문했다.
늘 즐거운 장소였지만 이때는 어딘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일러스트에 참고할 여러 사진들을 촬영했는데, 굉장히 좋은 날씨여서 멋진 사진들을 많이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5월의 일산 호수공원'
햇살이 비추면 파스텔 톤으로 환하게 빛나는 공원의 모습이 늘 인상적이었다.
그림으로도 그 느낌을 주고 싶었다.
7월로 작업하던 중에 5월로 변경되면서 외투를 입은 사람 몇 명을 추가했다.
텀블벅은 펀딩에는 성공했지만 수익은 나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작가 몇 명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나도 달력 한 세트를 주문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로 받은 착수금도 그대로 돌려준 거나 마찬가지.
그래도 하나는 소장하고 싶었다.
A3사이즈에 달력이 제본되어 있지 않아서 걸어놓기에는 좀 불편했다.
굿즈들의 구성이 굉장히 안 좋았다.
그림의 일부분을 크롭 한 이미지인데, 왜 저렇게 구성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이런 것도 작가들의 의견을 수렴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작은 부분을 확대한 것이기 때문에 저해상도인 것도 눈에 잘 띄는...
원본이 그대로 수록된 엽서는 그나마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