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2. 12:52ㆍ작업일지/낙서 습작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집에도 그림 작업을 하기 위한 세팅이 모두 되어 있지만 집이라는 환경에서 창의력과 집중력을 발휘하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집 근처도 아니고 지하철을 타고 3~40분가량을 이동해야 하는 가락시장 쪽에 있다.
문정동 ~ 가락시장 부근은 어릴적에 친척이 살고 있어서 추억이 많은 동네이다.
추억을 쫓아 그쪽으로 몇번 갔다가 매장도 넓고 콘센트도 많아서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지역 자체가 나의 어린 시절을 되새기게 해주는 곳이라 그런지 그런 감성이 필요한 작업이 정말 잘되는 곳이었다.
첫 방문이 언제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2019년 경일 것 같고 단골처럼 자주 드나든 시기는 그 해 말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그 곳을 나의 작업 아지트로 삼은 것도 4년이 다 돼 가는 것이다.
수많은 작업들을 그 곳에서 했고 특히 나의 첫 책의 많은 작업이 이루어진 곳이라 의미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10일)에 방문했을때 문 앞에 11월 15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이 날은 갑자기 다가온 겨울 느낌에 하루종일 기분 좋은 날이었다.
난 어째서인지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좋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바람으로 실려오는 겨울 냄새가 좋다.
아마 어릴때에는 떠들썩한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 시즌이 특히 즐거웠고 유년기의 즐거운 기억들이 겨울공기와 연관되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안내문을 읽기 전까지 나는 카페에 가서 따끈한 유자차를 마실 생각에 약간은 들떠있었다.
그런데 안내문을 읽자마자 마치 오래된 친구 하나가 떠나가는 느낌이었다.
이곳을 드나들던 4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만의 패턴이 있었다.
몇 시간 작업을 하고 나서 늦은 저녁을 먹고 문정동 쪽에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많은 동네들을 산책하고 귀가하는 것.
산책하면서 다음에 할 작업과 오늘 한 작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익숙하고 편했던 내 카페가 없어지면 어디로 가야 할까.
오랜 시간 습관처럼 자리 잡은 하루 계획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나의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이 이렇게 큰 변화일 줄이야.
2021년 12월 말에 그 카페에서 그렸던 낙서.
책 작업을 열심히 하다가 좀 피로해져서 기분전환 겸 그렸던 기억이 난다.
21년 크리스마스가 정말 추웠는데 그때 밖에 오래 있었다가 집에 와서도 체온이 오르지 않아서 엄청 고생했었다.
그 여파인지 다음날부터도 유난히 추위에 약해졌었다.
원래는 웬만한 추위는 느끼지도 않는 체질이었는데 이때 정말 큰 코 다쳤다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그 고생이 그림에 실려있어서 인지 이 낙서를 볼 때마다 겨울 생각이 많이 난다.
간단하게 그린 그림이지만 뭔가 겨울 냄새가 나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이 그림을 보면 없어질 그 카페 생각이 더 많이 날듯 하다.
두 번째 겨울이야기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