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2. 10:55ㆍ잡담
우리 집에 온 손님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이걸 다 어떻게 키웠어요?” 바로 우리 집 화분들을 보고 하는 소리다. 예전부터 엄마의 취미였던 꽃 가꾸기... 남들이 다 키우기 어렵다고 하는 식물들도 엄마 손에 맡겨지면 한껏 풍성해지곤 했다.
어느 날, 시골에 혼자 계신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몸뿐만 아니라 치매 증상도 생겨서 도저히 혼자 계시긴 힘든 상황이 됐다. 다른 친척들은 모두 시간을 내기는 힘들다고 해서 결국 엄마가 도시 생활을 잠시 멈추고 외갓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골에 가기 전날, 엄마는 햇살이 잘 드는 현관 앞에 집안 화분들을 모두 내다 놓았다. 그중 노란 장미꽃이 눈에 띄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잎사귀도 말라있고 꽃도 시들시들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그 장미가 병에 걸려 있다고 했다. 광택이 날 정도로 건강한 다른 식물들 사이에 있으니 유난히 더 가엾어 보였다. 수많은 화분들 중에 하나이지만 엄마도 그 녀석을 두고 시골에 가는 게 좀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외갓집에 가고 나 혼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하는 생활은 귀찮음과의 싸움이었다. 제때 끼니를 챙겨 먹는 것 만해도 다행일 정도였다. 그렇게 생활한 지 일주일 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집에 별일은 없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화분에 물은 줬냐고 했다. 그 질문을 받고선 말문이 막혔다. 일주일 동안 화분들에 대한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거짓말로 잘 챙겨줬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화분들에게 물을 줬다. 고작 일주일 물을 안 줬다고 시들거나 하진 않겠지만 하나하나 살펴보게 됐다. 그리고 다시 노란 장미꽃이 눈에 띄었다. 기분 탓인지 좀 더 시들한 녀석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날 뒤로는 좀 더 정성을 담아서 물을 주고 매일매일 상태를 살폈다. 노란 장미에게는 눈에 보일 때마다 물을 주고, 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완전히 회복한 노란 장미꽃의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줬다. 시들시들했던 장미꽃은 떨어지고, 새로운 꽃봉오리가 만개한 모습이었다. 시골에서 몸과 마음의 고생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장미꽃의 회복은 자그마한 위안이 되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엄마가 꽃을 가꾸는 모습을 언제나 대수롭지 않게 바라봤는데 직접 물을 주다 보니 엄마가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꽃들을 가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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