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8. 12:55ㆍ작업일지/사진
2010년 대학교에 복학하고 나서 타전공의 수업도 들을 수 있는 제도가 생겼었다.
복학한 첫 학기에는 나의 전공 위주로 수업을 들었지만, 다음 학기부터는 다른 전공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그중에서도 사진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졸업할 때까지 '사진과' 수업 중 하나는 꼭 신청했었다.
물론 타 전공 수업을 듣는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쓰는 단어가 달랐기에 교수님이 하는 말씀을 다 못 알아들은 적도 많았다.
단어의 이질감에서
부터 타전공자가 느끼는 압박감이 꽤 많았고, 그렇기에 주눅 들지 않기 위해서 내 전공보다 더 적극적으로 물어보면서 수업에 임했던 것 같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학기에도 '사진과'수업중에 포토샵을 가르치는 수업을 신청했었다.
포토샵의 여러 기능을 알고 있었지만, 그림을 그릴 때 쓰는 기능과 사진을 위한 기능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수업을 통해서 뜻하지 않게 첫 전시회의 경험을 얻어갈 수 있었다.
이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이 마침 갤러리를 소유하고 계셨고, 한 학기 동안 수업과정에서 포토샵을 이용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학기 마지막에는 전시를 하자고 제안을 하신 거였다.
이전학기에 들었던 사진수업은 주로 사진 전시회를 견학 다니던 수업이었는데, 정말 인상적인 전시가 많아서 이후로도 전시 보는 걸 즐기게 되었다. (그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여러 갤러리들은 지금도 자주 다니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런 전시회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왠지 두근거렸다.
전시회를 계획하자마자 주제를 정해야 했었다.
이전 수업 때부터 느낀 것이 사진전공 친구들은 발표에 많이 소극적이었다.
모두 주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던 분위기였고 그 자리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제안을 했다.
당시에 나는 몇몇 블로그를 통해 오래전 사진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지역의 오래전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그 시대의 시공간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옛날 사진과 같은 장소를 같은 구도로 찍어서 사진 속 요소들을 서로 합성해서 여러 시공간이 공존하는 작업을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교수님에게 '도시'라는 주제로 내가 생각한 작업 방향을 이야기했더니, 만족스러워하셨다.
그렇게 그 수업의 최종 목표인 전시회의 주제를 내가 선정하게 되었다.
2011년 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시기에 포토샵수업의 마지막 단계인 전시회가 열렸다.
내 인생의 첫 전시회였다.(입시미술때 했던 학원전시회를 제외한다면)
주제도 내가 정하고 의욕도 넘쳤지만 졸업작품을 완성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결국 내가 생각한 작업은 아예 시도조차 못했다.
일단 베이스가 될 예전 사진을 구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장소와 구도로 다시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하지 못했다.
의도대로 작업을 할 수 없게 되니 작업 자체를 졸속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말했던 내 생각에 큰 기대를 하고 있던 교수님도 결과물에서 내 생각을 읽을 수 없다고 하셨다.
여러 시공간이 섞여있는 합성사진을 계획했지만, 사진에 오래된 질감을 주는 방향으로 계획이 대폭 축소되었다.
그 축소된 계획으로 세 개의 작품을 완성했고, 그중에 하나를 전시회에 낼 수 있었다.
수업의 마지막 날이자 전시회 오픈날에 수업을 듣던 모든 학생들이 갤러리에 모였다.
역시 전공자들의 작품은 사이즈부터가 달랐다.
그 자리에서 각자의 작업물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졌다.
수업시간에는 조용하던 친구들이 그 자리에선 굉장히 냉철했다.
내 사진을 평가할 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혹평을 했었다.
타전공자가 넘보지 말아야 할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작품들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교수님이 나를 보며 말씀을 하셨다.
"어쨌든 여기 있는 모든 친구들이 너의 생각을 주제로 작업을 한 거야."
어느덧 저 사진도 무려 12년 전 사진이 되었다.
언젠가는 이때 전시했던 사진으로부터 내 의도대로 합성하는 계획을 완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명동거리의 간판.
그렇지만 시대는 낡은 것을 빠르게 버리기에 간판 속의 내용들은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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