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7. 14:30ㆍ스토리/독각대장
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것 같다.
그림은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친구들이 와콤 인튜어스 2,3을 열심히 사용하고 있을 때에도 난 사용법조차 잘 몰랐다.
그러다가 졸업작품을 진행하면서 디지털 드로잉의 필요성을 뒤늦게 느꼈다.
당시에 장학금 받은 걸로 와콤 인튜어스 4를 샀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맥북과 인튜어스 4로 졸업 후에는 많은 공모전 도전과 웹툰 작업에 활용했다.
그때도 태블릿으로 스케치를 하는 게 영 어색해서 주로 채색 작업에 많이 활용했었다.
그러다 동기 형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봤다.
저렇게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웹툰 작업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지만 오랫동안 정리되어 있던 나의 작업 루틴을 쉽게 깨지 못했다.
나는 종이와 펜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걸 스캔한 뒤에 와콤 태블릿으로 채색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진행했었다.
내가 좀 더 새로운 방식을 바로바로 받아들이는 성향이었다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사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는 모습은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고 얼마 뒤에 결국 돈을 모아 아이패드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고모께 말씀드렸더니 그날 바로 아이패드를 사러 가게 되었다.
내가 작업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비싸든 바로 사야 된다는 게 고모의 말씀이었다.
그렇게 2018년 봄에 아이패드 프로 2세대를 고모에게 선물 받았다.
그때는 아이패드 프로만이 애플펜슬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종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모델로 쭈욱 작업 중이다.
아이패드를 사고 나서 동기 형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어떤 어플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사용법은 어떤지 초기에 배우게 돼서 바로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웹툰 작업을 할 때 내 생각대로 편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프로크리에이트를 받자마자 처음으로 그리기 시작한 게 내가 작업하고 있던 '독각대장'의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중간에 다른 작업을 하느라 완성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4개월) 내가 포토샵으로 작업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물이 나왔다.
언젠가 공덕역을 지나다가 도깨비 김밥이라는 식당을 봤다.
그 식당을 보고 이 그림을 생각했다.
하교길에 분식집 앞에서 친구들과 군것질로 잔치를 벌였던 추억을 담고 싶었다.
프로크리에이트로 시도한 첫 그림이다.
지금 보면 색감이나 빛을 이용하는 것이 많이 어색한 그림이다.
지금까지 내가 작업하는 데에 활용 중인 아이패드와 프로크리에이트의 시작점인 그림이라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아직은 나의 아이패드 프로 2세대가 충분하지만 매번 새로운 아이패드가 출시될 때마다 고민이 된다.
뭔가 획기적인 변화를 주는 도구가 생긴다면 이번엔 곧바로 받아들일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