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번 있었던 수능 시험날의 추억 - 엄마의 스웨터 [ 짧은 글 / 수필 / 읽을거리 ]

2023. 11. 16. 12:19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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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에는 수능 한파라는 단어가 뉴스에서 많이 나왔었다.

날씨가 온화하다가도 수능날이 오면 거짓말처럼 추위가 닥치기 때문이었다.

올해 수능날인 오늘은 비교적 온화한 날인 것 같다.

무려 비도 오고 말이다.

 

내가 수능시험을 봤던 2005년의 수능날은 역시나 수능한파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매우 추운 날이었다.

난 미대입시를 준비 중이어서 다른 대다수의 입시생들에 비해서는 수능에 대한 부담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능은 정말 중요한 과정이긴 했다.

평균적으로 3등급만 나와도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서 꽤 많은 등수를 앞설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수능 전날에 느꼈던 감정들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이제까지 그 하루의 시험을 위해서 학원 다니고 공부했던 시간들이 갑자기 하얗게 변한 것처럼 허무하게 느껴졌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내가 뭘 준비했는지 그 시간 동안 뭘 했는지 스스로에게 엄청 되물었었다.

그만큼 스스로 자책을 많이 했고 자신감도 없었다.

 

나만큼 긴장했던 사람은 바로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수능날까지도 옷 하나를 뜨개질로 짜고 계셨는데 수능날 아침 나에게 그 옷을 입고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점심에 먹을 도시락도 정성껏 만들어서 주셨다.

그때 어머니께서 만드셨던 옷은 색이 좀 특이했다.

이제까지 만드셨던 옷과는 전혀 다른 색상인 데다가 일상에서 입기엔 좀 튀겠다는 생각이 드는 옷이었다.

아마 다른 때였으면 왜 이런 색으로 옷을 만들었냐고 투덜거렸겠지만 이 날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이 옷이 너무 고맙고 의지가 됐다.

이제까지 철없게 살아왔던 나에게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집 근처에 있던 상문고등학교에서 수능시험을 봤다.

내가 다니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그 학교의 교문을 들어서는 것 자체가 매우 어색하고 긴장됐다.

교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험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간식들을 나눠줬고 손을 잡고 응원을 하기도 했다.

그 순간 긴장감이 많이 사라졌다.

신기했다.

TV에서 그런 장면을 봤을 때 저게 무슨 의미인가 그냥 넘겨버렸었는데 내가 그 현장에서 당사자로서 상황을 맞이하니 그게 모두 힘이 됐다.

수험장으로 가서 나의 자리에 앉아 내가 입고 온 엄마의 스웨터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가 벅차오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주 작은 긴장감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빨리 시험을 보고 싶어서 근질거렸다.

 

신기하게도 내가 이제까지 본 모든 모의고사 보다 수능시험의 성적이 훨씬 높게 나왔다.

내가 다니던 미술학원 선생님도 나의 성적을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난 수능성적을 보지 않는 학교에 입학했지만 내 인생 딱 한번 있었던 수능시험날은 큰 의미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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